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10. 28 방송분)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의 기후 공약을 평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환경운동가 세 분이 창원지방법원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각종 선거에 출마한 공직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우열을 가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지난 3월 29일, 경남 지역 132개 단체로 구성된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 인류에게 닥친 가장 중요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내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국회의원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정책이 중요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에 나온 후보들 중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공약”을 낸 후보자를 뽑는 유권자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약 1주일 후인 4월 4일에는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은 총선에 출마한 경남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 37명에 대한 기후 공약 평가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결과 발표 자료에 따르면 수많은 공약 중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나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37명 중 15명인 40.5%였습니다. 반대로 아예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공약이 전혀 없는 후보로는 국민의힘 강민국, 김종양, 박상웅 후보와 무소속 김병규 후보가 지목되었는데,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일반산업단지 건설과 도로 확장 등 개발 공약” 냈었다고 합니다.
개발공약과 기후 공약 동시에 남발한 후보
아울러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하여 개발 공약과 기후 공약을 남발한 후보도 있었는데요. 더불어 민주당 소속 민홍철 후보와 황기철 후보, 국민의힘 소속 이종욱 후보가 지목 되었습니다. 민 후보는 미세먼지 숲을 조성하겠다는 기후 공약과 함께 그린벨트 규제 완와를 통한 지역균형발전과 재산권 보호 공약을 함께 내놓았구요. 황 후보와 이 후보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비롯한 여러 기후 공약을 제시하였으나 동시에 비행장 이전, 고도 제한 해제와 같이 탄소 배출을 부추기는 공약을 함께 제시한 것으로 발표 되었습니다.
경남기후위기 비상행동은 각 후보자가 낸 공약을 평가한 후 지역 유권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후보와 소극적인 후보를 알리기 위하여 각 후보자에 대한 기후공약에 등급을 매겨 최우수-우수-보통-미흡-낙제 5등급으로 발표하였는데요. 창원 지역의 경우 11명 후보 가운데 아쉽게도 최우수를 받은 후보는 한 명도 없었고, 우수 후보는 허성무, 송순호, 여영국 세명의 후보가 선정되었습니다.
보통 후보에는 김지수, 이옥선, 황기철 후보가 선정되었으며, 미흡 후보에는 최형두, 윤한홍, 이종욱 후보가 각각 선정되었으며, 낙제 후보로는 강기윤, 김종양 후보가 선정되었습니다. 최우수 후보가 없었던 것은 기후 공약을 제시하기는 하였지만, 분명한 목표와 체계적인 정책 실행과정을 밝힌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고, 기후 공약에 소홀하면서 도로 건설, 산업단지 건설 등 개발 공약만 내놓은 후보들이 낙제 후보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거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경남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 세 사람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창원지방법원 4형사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직선거법 제 108조의 3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요. 이 법 1항에서는 언론기관이나 단체는 정책이나 공약에 관하여 비교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2항 단서 조항으로 “후보자 등별로 점수 부여 또는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해보자면, 음식을 비교 평가 할 때, ‘맛있다’ ‘보통이다’ ‘맛없다’라고 표현하면, 비교 평가는 그 자체로 우열에 대한 판단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렇게 볼 때 현행 선거법이 굉장히 모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점수는 공개하지만 등수는 매기지 마라
법률가들은 여러 측면에서 이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법조문에 있는 <비교 평가>라는 말은 그 안에 이미 우열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 비교 평가 허용을 원칙으로 해놓고, 단서 조항으로 이 원칙을 막고 있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아울러 이 조항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언론사가 공익을 위해 하는 평가를 처벌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두 번째는 “공약과 정책을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해놓고, 가장 중요한 우열을 가릴 수 없도록 한 것은 본질을 침해하지 말라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TV토론회에서 후보자의 말 한마디까지 맞고 틀리는지를 낱낱이 분석하고 등급을 매기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에 빗대어 보면, 우리나라 선거법이 지나치게 언론과 단체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책 평가 결과 불리한 점수를 받은 쪽이 이의제기를 하거나 반론요구를 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역시 과도하다는 지적입니다. 사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정책과 공약에 대한 비교 평가를 할 때 서열화 금지 조항을 폐지하라는 개정안”을 낸 적이 있었는데,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지난 14일에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와 관련하여 국회 앞에서 전국교사노조, 전교조,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좋은교사운동 등 5개 교원단체가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는데요. 교사들은 선거와 관련하여 어떤 의사표시도 불법행위로 낙인찍는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교사들은 유‧초‧중등 교육을 가장 잘 아는 현장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후보 공약에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는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였습니다. 실제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좋은교사운동’이 교육시민단체와 함께 <서울시교육감 후보자 초청 교육 공약 평가 및 심층 면접>을 진행하려다가 중앙선관위에 의해 가로막혔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세 명의 환경운동가들은 재판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요즘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선거법 위반 수사는 1년 이 다되가도록 기소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선관위에 세 차례나 위법 요소를 확인하면서 진행했던 공약 평가로 재판정에 세우는 행위 자체가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형평성을 잃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은 “후보자를 서열화 금지 조항이 포함된 선거법 108조의 3이 위헌소지가 있기 때문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법원의 판단도 중요하겠지만,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개정안을 냈던 서열화 금지조항을 국회가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