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12. 04 방송분) |
지난달 23일 경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2024년도 정기분 경남도 공유재산 관리계획안, 수정동의안을 가결하였는데요. 수정안은 심의 안건 10건 가운데, 경남도의료원 진주병원 용지매입 및 신축(취득)과 경남도 수목원 확대 조성을 위한 용지매입 등 2건을 삭제함으로써 서부경남 공공병원 설립 사업이 최소 6개월 이상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서부경남 공공병원 건립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2013년 홍준표 도지사 시절 적자를 핑계로 폐원한 진주의료원을 대신 할 서부경남 새공공병원은 젼임 김경수 도지사 재임기간에 건립 계획을 확정하였습니다. 경상남도는 도비 919억원과 국비 659억원 모두 1578억원을 들여서 진주시 정촌면 항공국가산업단지(옛 예하초등학교)에 300병상 규모의 도립의료원 진주병원을 개원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추진된 서부경남 공공병원 건립 계획은 2020년 도민들이 참여하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공론화협의회에서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도민 대표들은 △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의료진을 갖춘 병원 △24시간 응급체계를 갖춘 병원 △투명성이 확보된 병원 △감염병 등 국가 재난 대응 병원 △500병상 이상 규모를 갖춘 병원 △착한 적자를 공공이 책임지는 병원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담아 도지사에게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김경수 전 도지사는 공론화협의회 결정에 대해 "경남도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떠한 정치적 변화나 새로운 도지사가 오더라도 절대 뒤집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거듭되는 적자타령에 공공병원 건립 계획이 자꾸 흔들리고 있습니다.
서부경남 공공병원 설립 지연... 병상 규모 축소
만약 예정대로 지난달 23일 도의회에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었다면 2025년 착공하여 2027년에 서부경남 공공병원을 개원할 계획이었는데, 도의회가 용지매입을 막는 바람에 최소 6개월 이상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공론화를 거쳐 확정된 도민 의견이 수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수행한 용역 과정에서 병상 규모가 500병상에서 300병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당초 계획보다 병원 규모가 작아지면서 진료과목도 19개 과목으로 확정되었고 그에 따라 인력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 서부경남 공공병원 건립 계획에 제동을 거는데 앞장선 도의원은 국민의힘 비례대표 박도의원과 김해지역 도의원들입니다. 재검토 의견을 낸 도의원은 사업규모와 사업추진 적정성, 시급성 등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수정안을 제안하였고, 사천을 지역구로 둔 같은 당 임철규 도의원이 공공성과 공익성 측면에서 원안가결 해야 한다고 설득하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기획행정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수정안에 찬성함으로써 서부경남 공공병원 건립 일정이 늦춰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수정안에 찬성한 국민의힘 도의원은 “도민들에게 공공병원에는 좋은 의사가 안 온다, 보건소 수준이라는 인식 자리잡고 있다”, “감기 수준이면 지방의료원에 가지만 고가 치료비가 들고 고도 기술이 필요할 때는 안 간다”, “그렇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도 적자가 뻔하다”며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역시 수정안에 찬성한 또 다른 도의원은 “불 보듯 뻔하게 적자로 시작할 것 같은 우려가 되는데, 적파 폭을 줄일 만한 전략과 계획이 안 보인다”고 또 다른 의원도 “공성은 좋지만 적자 폭이 너무 크다”면서 수정안에 찬성하였습니다.
경남도의회 적자타령으로 지연시킨 이유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부경남공공의료원 건립 계획에 적극적으로 재검토 의견을 낸 두 도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김해시에서는 <김해공공의료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월 16일 김해공공의료원 설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 1차 중간보고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는데요. 특히 최근에 유일하게 300병상 이상 규모였던 김해중앙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의료공백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도의원들은 김해시가 추진하는 시립의료원은 적자 때문에 어려운 운영이 예상되니 도립의료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진주지역 공공병원 추진에는 딴지를 걸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고 지역이기주의라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부 경남 공공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코로나-19가 대유행 할 때 확실하게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도내에서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할 병원이 서부 경남에는 없었습니다. 코로나-19를 전담하는 마산의료원과 국립마산병원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등이 모두 창원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거창, 함양, 산청, 진주 등 서부경남 코로나 환자는 치료를 받으러 마산의료원까지 1~2시간씩 구급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마산의료원이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고 코로나-19 응급환자를 돌보는 동안 지역의 민간병원들은 PCR 검사를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기계를 앞다투어 도입하여 많은 수익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공공병원이 적자를 내지 않고 수익을 높이려고 했다면 민간병원처럼 PCR 검사에 매달렸다면 생사의 기로에 있던 코로나 환자는 누가 돌봤을까요?
지방정부가 흑자를 보도라도 공공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를 확인시켜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이 수익성이 낮아서 하지 않는 진료를 해야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병원의 적자를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착한적자’라고 불렀다고 봅니다.
공공병원이 필요한 것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과 취약계층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시장에서 일정한 수준을 점유해야 민간과 공공이 서로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고, 이윤추구에만 매달리는 민간병원을 의료공공성을 함께 높이는 파트너로 견인할 수 있습니다.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의 의료협력체계도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내 종합병원 없는 시군 13개 지역
수도권에 비해 현저하게 뒤쳐져 있는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공공병원 설립이 중요합니다. 전국에 319개의 종합병원이 있는데, 경남에는 23개 밖에 없구요. 상급종합병원은 전국에 45곳이 있는데, 경남에는 3곳 밖에 없습니다. 도내에서도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격차는 더 심각한데요.
종합병원이 없는 시군이 13개 지역이고, 아기 낳을 곳이 없는 A급 분만 의료 취약지역이 4개 지역, 그리고 14개 시군은 응급의료 취약지역입니다. 농촌 지역의 취약한 의료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산청군 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채용과정이었습니다. 연봉 3억 6천만원 제시했지만 1, 2차 공고 때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고, 4번째 공고 끝에 나이 70세가 되신 의사 선생님을 겨우 모셔왔지요.
실제로 경남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입니다. 공공병원을 설립해도 의료인력의 공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고, 지금 있는 공공병원에도 의사가 부족합니다. 2022년 기준으로 경남의 의사수는 5716명으로 전국 광역시도 중 12위입니다. 인구 십만명당 의사수는 174.2명으로 전국평균 218.4명과 비교하면 1441명이 부족합니다.
의대 정원 역시 전국 3058명 중에서 경남에는 76명뿐입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경남지사가 거둬들인 건강보험금 약 1조원은 다른 지역 병원, 대부분 수도권 병원으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지방에서 거둔 건강보험금 중에서 약 7조원을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주고 있습니다. 공공병원을 더 설립한다고 해서 의료격차가 단번에 해결되지도 않고,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민들을 더 잘 살게해주겠다고 공직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도의원이라면 의료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의과대학을 신설하고, 의대 정원을 늘이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할텐데, 도민을 대신하여 중앙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텐데... 또 다시 공공병원 적자타령을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무원이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한전이 적자를 봐도 전기를 공급하고, LH가 적자를 보면서도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처럼 공공병원의 ‘착한적자’는 도민들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함께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