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허정도 <한 도시 이야기>... 옛 마산시의 성장과 변화 기록한 책

도시와 건축을 연구하는 건축가 허정도가 쓴 <한 도시 이야기>는 고려 시대 말기 마산포로부터 유래된 도시 명칭을 700여 년 만에 자발적(?)으로 버린 도시, 옛 경남 마산시의 성장과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도시에 살아온 사람들이 흔히 들었던 '전국 7대 도시' 마산은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현, 창원 특례시)의 일부가 되었다. '마산'이라는 옛 명칭은 그냥 합포구, 회원구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구청 이름 앞에 길고 부자연스럽게 남아 아직은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로 불리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마산 지역은 가야 시대 고분군이 남아 있고, 일본 정벌을 위해 3만 3천명의 여몽연합군이 주둔하였던 고려 후기에는 당대 최고의 군사요충지였다. 마산이라는 명칭 역시 몽골군의 대규모 목마장이 세워지면서 말과 관련된 지명들이 생겨났고, "말을 실어 나르던 포구"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도시로 마산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군산, 성진과 함께 1899년 5월 1일 항구가 열리면서부터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장이었던 마산은 결국 제국주의 열강의 개항 압력에 굴복하면서 개항하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에서 찾은 여러 기록을 토대로 1899년 마산의 모습을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마산포는 마산창을 중심으로 2천여 호의 한옥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었으며, 노변에는 상점이 있었다(중략). 도로는 보행전용 혹은 손수레나 지게 정도의 통행이 가능한 폭 2m 가량의 좁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1908년 일본인 다부치 도모히코가 쓴 <한국신지리>를 인용하는데, 현재 마산에 사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흔히 한 때 전국 7대 도시였던 마산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선시대 3대 항구였으며, 부산이 경남에서 1위였을 때, 마산은 3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구마산이라 칭한다. 수천 여호에 인구가 약 4500에 이르는데 옛날 조공미를 모은 집산지로서 원산, 강경과 더불어 팔도 3대 항구 중 하나로 일컬어 온 곳으로 경상남도에서는 시가로서 제3위를 점한다. 마산 개항 당시에는 일본 상인들이 모두 여기에서 조선인들과 혼거하여 살았다."(본문 중에서)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사람들의 집단거주지가 만들어지고 철도가 놓이면서 마산은 빠르게 발전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귀환동포와 피난민으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시가 성장하였고,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으로 대표되는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건축가이자 도시학자인 저자는 주거지와 건물을 통해 시가지 변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도로 개설과 확장, 그리고 특히 마산의 모습을 바꿔 온 무려 마흔아홉 번에 이르는 매립 과정을 통해 마산의 도시형성과 발전, 쇠퇴 과정을 자세한 기록과 지도로 남겼다.
쇠퇴 조짐은 있었다, 무능한 자들은 외면하였다
아울러 저자는 마산이 인접한 창원, 진해와 협력하면서 발전하고 경쟁하면서 흥망성쇠를 거쳐온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산 사람인 저자는 특히 창원의 가파른 성장과 마산의 쇠퇴가 일찍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당시 행정 책임자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마산은 영원히 창원의 실제적인 경제 중심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추세변화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미래를 감지할 수 있는 현상과 지표들이 조금씩 나타났다."(본문 중에서)
실제로 1982년 경남신문이 창원으로 옮겼고, 1983년에는 마산대학(현 창원대학)이 마산을 떠났고, 1987년에는 KBS가 창원으로 이전하였으며, 1988년에는 몽고장유(몽고간장)이 옮겨갔고, 경남여성회관, 한국은행, 파티마병원이 차례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정책결정권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들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채 IMF 경제 위기가 들이닥쳤으며, 마산을 대표하는 기업 한일합섬이 무너지고 이어서 코리아타코마, 경남은행, 성안백화점 같은 기업들이 부도나거나 매각, 퇴출되면서 지역경제의 대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구조 조정의 결과는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재편이었으며, 마침내 2010년 행정구역통합은 어떤 면에서 '화룡점정' 이었다.
저자는 도시사의 관점에서 지난 120여 년간 마산 역사는 곧 바다(해안) 매립의 역사라고 보고 있는데, 1904년 일본 육군이 당시 마산역 부지 조성을 위해 시작한 첫 번째 매립부터 2011년 마산시가 시작한 해양신도시 매립까지 마흔아홉 번의 매립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산만에서는 해방 전에 총 24회의 매립이 이루어졌고, 해방 이후 25번의 매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성장을 멈춘 도시, 빚만 남은 대규모 매립지
인구가 급증하고 공장이 세워지고 도시가 확장을 거듭하던 시기, 매립을 통해 땅을 확보하는 것은 가장 쉬운 선택이었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도시가 확장을 멈춘 시기에 시행된 대규모 매립공사는 도시의 쇠퇴를 시키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던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특히 1999년 부두용지로 승인받아 매립한 후에 아파트(현대아이파크및 종합공공청사)를 지은 매립공사, 2005년 가포해수욕장을 매립하여 만든 가포 신항 매립공사, 그리고 2011년 가포 신항 항로 준설토를 매립하여 만든 마산해양신도시 매립공사는 대표적인 매립 실패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이 세 매립공사는 시공자가 모두 현대산업개발이라는 것이며,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매립공사에 반대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포신항과 마산해양신도시는 마산이라는 도시 이름이 사라진 후에도 '적자덩어리' 항만과 쓰임새를 찾지 못한 '빈땅'으로 남아 여전히 '토건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되어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도시를 책임지는 공직자들은 여전히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기도 한 상황이다.
아울러, 저자는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마산의 쇠퇴를 한방에 뒤집기 위해 마산시가 앞장서서 추진했던 마산, 창원, 진해 행정구역 통합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3선 연임 제한이 걸린 황철곤 마산시장의 저돌적인 통합 추진과 이를 반대하였던 시민단체의 주장을 모두 기록해 두었다.
특정 정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마산, 창원, 진해시의회 통합 의결 과정, 주민투표로 통합을 결정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창원시장과 창원시의회의 결정 과정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제 겨우 15년이 지났는데, 마산에는 '통합에 반대했었다'는 사람은 수두룩 하지만, 당시 '나는 적극 찬성했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우니 기록은 언제나 정말 중요하다.
이 책은 기록을 남기는 책이다. 방대한 참고 자료와 건축가이자 도시연구자인 저자가 복원해 낸 시대별 지도는 소중한 기록유산이 될 것이며, 마산을 연구하는 사람들, 마산을 콘텐츠로 새로운 예술작품을 구상하는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게 될 것이다.
저자는 마산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고, 마산을 주제로 <도시의 얼굴들>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이미 내기도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저자만큼 치열하게 연구하고 사회운동가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한 도시 이야기
창원·진해와 통합됨으로써 독립된 시로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 마산의 도시 변화를 시(時)계열적으로 정리하였다. 한 도시의 생성과 변화 과정을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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