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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교육

명문고 졸업하고 대학은 수도권으로...고향 안 돌아와

by 이윤기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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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4. 3. 19 방송분)

 

지난주 경남도의원 한 분이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 명문고등학교 육성을 위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설립>을 촉구하였습니다. 오늘은 수도권 쏠림과 청년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시대에도 지방 명문 고등학교 육성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지방 명문 고등학교 육성을 주장하신 분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경남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제주를 제외하고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지난 10여 년간 경남의 수월성 교육이 크게 후퇴한 것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도내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없어서 중학생들이 자사고 진학을 위해 타 시·도로 유출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였다고 하는데요. 

 

그가 인용한 교육부 교육통계 에 따르면 경남 도내에서 지난 10년 간 중학생이 관외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나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유출된 학생이 총 1417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데요. 경북의 경우 관외 자사고 유출이 201명, 전남이 121명인 것과 비교하면 7배~12배나 되는 많은 중학생들이 관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 이런 중학생들의 관외 유출은 특목고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요. 지난 10년 동안 과학고나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관외 유출도 344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비교했던 경북이 1735명, 전남이 1474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경남이 두 배 이상 관외 유출 현상이 심각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경남 교육청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경남에서는 중학교 졸업생 34만 2000명 가운데, 약 3.8%인 1만 3000명이 졸업 후 타 시도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고 합니다.

명문고 졸업하면 대학은 타 시도로...고향 돌아오지 않는다

한편, 그는 윤석열 정부가 4년 전 폐지되었던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설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데, 경남은 한 곳도 선정되지 않은 문제도 지적하였습니다. 정부가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40개 학교를 선정하였는데 경남은 한 곳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실제 전국의 자율형 사립고 현황을 보면, 서울 17개교, 부산 2개교 등 34개 학교가 있고,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는 전남이 11곳, 대구 5곳 등 전국의 40개교가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주장대은 경남에는 자율형 사립고도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도 없다보니 수월성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중학생들은 경남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하지 않는 현재의 경남교육정책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수도권 쏠림 현상과 이른바 인-서울이라고 불리는 서울 지역 대학 선호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두 어차피 서울로 몰려가는데, 수월성 교육을 하는 명문고등학교가 생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남을 비롯한 지방에서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첫 번째 이유는 진학이고, 두 번재 이유는 일자리 때문입니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서 청년들이 끊임없이 지역에서 수도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지역의 경쟁력을 되살리려면, 명문고등학교 육성이 아니라 ‘지방 명문 대학’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사고 진학을 위해서 경남에서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학생 숫자를 앞서 기자회견에서 10년 동안 1417명이라고 강조해서 많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평균을 내보면 한 해 겨우 140명 정도가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 할 뿐입니다. 이 학생들은 경남에 자사고가 생겨도 어차피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이나 타 지역으로 갈 학생들입니다. 즉, 청년 인구 유출 차원에서 보면 부작용 많은 자사고를 설립해서 우수 인재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기간은 고작해야 3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사고 설립해봐야 고작 3년 붙잡아 놓는다...어차피 대학은 수도권

자사고가 설립되면 지역에 이른바 새로운 ‘명문고’가 생길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대신 고교 평준화 이전처럼 일반 고등학교와 자사고로 학교 서열화가 가속화되는 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과거 비평준화 입시 때문에 지금도 창원이나 진주에는 과거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났던 특정 학교 출신이 국회의원이나 시장을 대부분 다 차지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경남에 필요한 것은 잘 키워주면 서울로 떠날 게 분명한 아이들을 모으는 명문고 육성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지역 명문대학 육성이 필요합니다. 올해 경남 지역 대학 입학 충원율을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대학과 경남대학은 신입생 출원율이 80%를 밑돌고 있고, 영산대, 인제대 등도 90%를 턱걸이 하였으며, 신입생 충원율이 100%인 대학은 360여 명을 모집하는 창신대 한 곳 뿐입니다. 이른바 명문 대학을 찾아 도내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앞다투어 지역을 떠나 인-서울 그리고 수도권으로 몰리다 보니 지방 대학들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한 방송국의 초 저출생 사회를 다룬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한 우리교육연구소 이현 대표에 따르면, 2038년에 대학 입시를 치르는 2020년생은 15만 명이고, 현재와 같은 대학 정원을 유지한다면 학생 수는 정원에 비하여 19만명이 모자랄 것이라고 합니다. 입학 정원 규모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면 지금부터 불과 15년 후인 2039년이 되면 39개의 대학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190개 대학 중에서 150개 대학이 모집 인원 0명이 된다는 것인데요. 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경남에는 대학이 1개 정도 살아남거나 혹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소멸은 예상 시나리오가 당장 아니라 대비해야 할 현실입니다. 대학 1~2개가 문을 닫아도 지역경제가 휘청거린다고 하는데, 불과 15년 후에 지역 대학이 모두 소멸 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입니다. 미래의 위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지방 명문고’ 육성을 주장하는 도의원의 목소리가 너무 무책임하고 한가롭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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