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10. 9 방송분) |
추석 연휴가 지나는 동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날씨가 많이 추워지면서 사람들 옷차림도 긴팔 셔츠와 자켓으로 바뀌었는데요. 옷장을 열어봤더니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새옷을 살까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오늘은 우리가 헌옷 수거함에 분리배출한헌 옷이 어떻게 재활용 혹은 재사용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헌옷 재사용, 재활용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요. 요즘은 헌옷 유통이 당근 마켓을 통해 많이 이루어집니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색상이나 디자인이 기대와 달라 구입가 보다 싸게 거래되는 경우도 많고, 한두 번 입었지만 버리기 아까운 옷들을 거래합니다.
다음 단계는 재사용인데요. 돈을 받고 팔기는 애매하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옷들은 아름다운가게나 녹색가게와 같이 헌옷을 판매하는 곳으로 모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리사이클링 샵으로 가는 헌옷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당근마켓에서 돈 받고 팔 수 없는 옷들은 대부분 헌옷수거함으로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아파트와 동네 헌옷수거함에 모인 옷들은 어디로 갈까요? 헌옷 수거함에 수거된 옷들은 1차로 전문 수거업체의 선별장으로 가게 됩니다. 선별장에서는 빈티지샵 같은 곳에서 판매할 수 있을만한 옷들을 1차로 골라내는데요. 전체 헌옷 중에서 약 5%정도가 새로운 주인을 만날 기회를 다시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나머지 95%는 어떻게 될까요?
수거함에 모인 헌옷 중, 95%는 해외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됩니다. 대부분의 헌 옷들은 포장재나 컨테이너에 실려 아프리카 가나를 포함한 여러 개발도상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이런 옷들은 가나의 ‘칸타만토’ 시장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시장에서 제3세계의 가난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내가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버리지 않고 헌옷 수거함에 분리 배출한 옷들이 이렇게 제 3세계 가난한 이웃들이 입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놓이는 소비자들도 있을텐데요.
헌옷 수거함에 담은 옷 95%는 가난한 나라로 수출
사실은 제3세계의 가난한 이웃들도 이른바 선진국 소비자들이 수거함에 담아놓은 헌옷을 다 입어낼 수가 없습니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있는 중고의류 시장을 예로 들어보면 매주 1500만 개가 넘는 옷들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워낙 많은 옷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중고의류시장에서도 절반 정도는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외면당한 헌옷들은 어디로 갈까요? 결국 불태워지거나 대충 매립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 곳에나 방치되어 쌓여 있던 헌옷은 개발도상국의 바다 쓰레기가 되고, 합성섬유에서 만들어지는 미세프라스틱들이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며 먹이사슬을 거쳐 결국엔 선진국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헌옷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내가 입던 옷을 헌옷 수거함에 넣는다고 해서 친환경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옷을 버리는 데에 이렇게 환경이 파괴되는데, 옷을 만드는 데에는 또 얼마나 환경이 파괴될까요? 현재 지구에 사는 인구는 80억의 사람들을 위해 1시간에 1000만 벌 이상의 옷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년이면 대략 1000억 벌의 옷이 생산되고 있으며, 지구상에서는 1시간마다 300만 벌 이상의 헌 옷이 버려지고 있으며 1년이면 모두 330억 벌의 옷이 버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80억명이나 살고 있으니 1사람이 1개씩만 새로 사도 80억벌이고, 5개를 사면 400억 벌이니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구 증가에 비하여 새옷 생산량이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이후 인구는 2배가 늘지 않았습니다만, 의류생산량은 무려 5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지금처럼 의류생산량이 늘어나면 결국 그만큼 폐기되는 헌옷도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1시간 마다 300만 벌 이상 헌옷 버린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오염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집집마다 옷장을 열어보면 형형색색의 다양한 컬러로 된 옷들이 눈에 들어올텐데요. 이렇게 옷에 다양한 색을 입히려면 엄청난 양의 물과 많은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흔히 사 입는 흰색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물이 무려 2700L라고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을 쓰다 보니 의류 산업에서 나오는 폐수의 양이 전체 산업용 폐수의 20%나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불태워 없애는 옷들은 헌옷만 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의 유명 브랜드 제조사들은 팔리지 않은 재고품 옷들을 유통시키지 않고 소각해버립니다. 매년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1000억벌의 옷 중에서 약 73%는 팔리지 않은 옷들이고 이월판매를 해도 팔리지 않는 옷들은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왜 멀쩡한 옷을 땅에 묻고 불 태우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텐데요. 유명 브랜드 제조사들은 회사 이미지를 중시하고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재고로 남은 옷들을 싸게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명 브랜드와 명품 제조사와 그 고객들은 남은 옷들을 싸게 팔면 브랜드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브랜드가 아니어도 남은 옷을 재고로 보관하려면 창고가 있어야 하고, 관리자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합니다.
명품 옷 73%는 팔리지 않는데...땅에 뭇고 불 태우는 까닭?
사정이 이렇다보니 프랑스는 프랑스는 판매되지 않은 옷을 의무적으로 기부하도록 법을 만들었고, 독일에서는 재고 폐기량을 문서화하여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며, 벨기에의 경우 자선단체에 기부를 유도하고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재고로 남은 옷을 마음대로 폐기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답니다.
많은 분들이 헌옷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지 않고 헌옷수거함에 분리 배출하는 것으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헌옷 분리수거와 헌옷 기부는 사실상 내가 만들어낸 섬유 폐기물을 다른 사람에게 떠는기는 방법일 뿐입니다. 요즘 친환경소재라고 마케팅하는 옷들도 대부분 폐폣트병을 재사용하였기 때문에 한 번 더 재활용되고 나면 소각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매립되면 미세플라스틱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패스트 폐션이 유행하면서 싼 옷을 사서 오래 입지 않고 버리는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어서 더욱 걱정입니다. 패션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를 패션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새 옷을 살 때마다 우리가 입는 어떤 옷도 완전히 재활용 할 수 없고, 지구상에는 아직 친환경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옷은 없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