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뒷걸음치는 주민자치...후퇴하는 민주주의

by 이윤기 2024. 2. 22.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3. 6 방송분)

 

지난 2013년 처음 제정된 주민자치회 표준조례가 지난 2월 초 일곱 번째로 개정되어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로 전달되었습니다. 오늘은 제7차 주민자치회 표준조례란 개정안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주민자치회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99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읍사무소, 면사무소, 동사무소로 불리던 마을 단위 일선 행정기관의 명칭이 주민자치센터로 바뀌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여전히 동사무소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동사무소에서 주민자치센터로 지금은 행정복지센터로 불리고 있고, 대부분의 행정복지센터에는 주민자치회 사무실에 따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1999년 처음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할 때는,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의 문화・복지 및 자치 기능을 강화하고, 주민자치센터 운영을 위한 심의·자문 기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막상 10~15년을 운영하여도, 지역공동체 형성이나 자치활동 강화, 주민복리 증진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고, 여가·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교육, 평생교육센터처럼 운영되었습니다. 

주민자치위원회 설치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정부는 주민들의 자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였는데, 바로 주민자치회입니다. 2013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전국 31개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시작하였고, 경남에서는 창원시 용지동과 거창군 북상면이 시범 읍면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주민자치 퇴행...두고보면 안된다


주민자치회는 읍면동의 주민자치를 위한 대표기구이자, 읍면동의 유일한 민관 협치 기구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주민자치 사무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로부터 업무수탁, 자치계획 수립, 주민총회 개최 등 다양한 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률과 조례로 뒷 받침하였습니다. 아울러 지방정부의 보조금뿐만 아니라 주민참여예산 그리고 읍면동에서 거둔 주민세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주민자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들이 모여 마을 총회를 열어 자치계획을 확정한 후에 자치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25명 이내의 주민대표를 공개모집 이후 추첨을 통해 선정하도록 하여 민주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30~40년 후 스위스와 같은 주민자치 선진국으로의 발전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민자치란, 읍면동을 근간으로 하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대면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1992년부터 시작된 지방자치제가 단체장과 의원을 중심으로만 운영되어 온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높이기 위해 시작된 것이지요. 다시 설명하자면, 1992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던 권한의 일부를 지방정부로 이양하였는데, 지방정부로 이양된 권한이 읍면동으로 지역 주민에게로까지 이양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자치기구입니다. 

따라서 주민자치회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주민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고, 주민이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심점이며, 선거로 한 번 대표를 뽑으면 4년 동안 주권자의  모든 권한을 맡겨야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제도는 시장, 도지사, 시의원, 도의원을 뽑아서 주민을 대리하게 하는 단체자치만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자치가 대등하게 발전하고 자지잡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회 활동...중앙정부가 견제하는 까닭?

제가 살고있는 창원시의 경우는 2004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 구성되고 주민대표들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센터 운영이 시작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주민자치 대표기구이자 민관협치 기구인 주민자치회가 설치된 것은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 15년이나 지난 2019년이 되어서야 11개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 운영이 시작되었고, 2021부터는 44개 읍면동 전역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지방정부로 전달된 행정안전부의 제7차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주민자치회 활동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7차 표준조례안 제안 취지는 “풀뿌리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주민자치회에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고, 지역 여건에 맞게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개선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고 우려스러운 것들입니다. 

첫째, 현재 참여를 원하는 주민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하는 것을 선택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주민자치위원회 때처럼 읍면동 단위로 심사위원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장, 통장 등을 당연직 위원으로 할 수 있도록 하여 일반 주민의 참여 기회를 제한하고, 관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후퇴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 주민자치위원이 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사전 6시간 의무교육 조항을 삭제하여 주민자치에 대한 기초이해와 공동학습의 기회도 없애버렸습니다. 실제로 주민자치회 전환 이후 대부분의 주민자치회는 기본교육, 심화교육 등 더 많은 교육을 원하고 있는데, 최소한의 기본교육조차 없애버려 자치수준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또한 법인 단체 등이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삭제하였습니다. 민선 7기 박완수 도정에서 곧 운영이 중단될 예정인 경상남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같은 기구 운영를 지원하는 근거를 표준조례에서 삭제하였습니다. 앞서 서울시는 작년 12월 마을만들기 조례를 폐지하고,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해산하기도 하였지요. 

넷째, 표준조례에 30인, 창원시 조례에는 25인으로 되어 있는 주민자치회 위원 정수를 10인, 20인 등으로 축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장, 동장과 함께 읍면동에 있는 이른바 자생 단체 대표나 마을유지들만으로도 구성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번 행정안전부의 제7차 주민자치 표준조례안 개정은 전국적으로보면, 2013년 이후 착실히 성장해온 주민자치회의 뿌리를 흔드는 역주행이며, 창원시로보면 2019년 이후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주민자치회 활동을 크게 후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표준조례는 법령의 합치성 및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 지원 차원에서 제공되며,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 과정에 참고적인 자료일 뿐입니다.  특히 표준조례는 주민자치 현장, 지방자치단체 담당공무원,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개정되어야 하는데, 당사자인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이런 표준조례가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으니 읍면동 풀뿌리 주민자치현장에서 주민자치회 조례의 후퇴를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