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24시간 돌봄과 노동시간 연장

by 이윤기 2024. 1. 12.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1. 2 방송분)

 

지난 연말 창원특례시 조명래 부시장과 좋은세상물려주기운동본부 그리고 창원의창구 김영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원산단 내에 <영유아 돌봄복합보육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오늘은 정부의 노동시간 확대 정책과 24시간 영유아 돌봄 정책을 묶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자회견에서 김영선 의원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영유아 돌봄복합보육센터>를 건립하여, 부모의 보육환경에 맞는 맟춤형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혔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창원에 추진 중인 방위·원자력 산업 특화 국가산단에도 <복합보육센터>를 설치해서 영유아 출산 및 보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영선 의원뿐만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도 돌봄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말 교육부는 돌봄 공백을 메꾸고 사교육 부담을 덜어 주겠다면서 방과후 학교와 돌봄 교실 확대를 약속하였습니다. 이른바 초등 늘봄학교로 이름 붙은 초등 전일제는 초등 4~6학년 아이들의 돌봄교실 운영시간을 오후 8시까지 확대하고 방과후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런 뉴스를 따로따로 볼 때는 정부가 일하는 엄마, 아빠들을 위해서 맞춤형 보육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연말, 대통령 지시로 발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발표한 노동시장 개편 권고안과 연결시켜보면서 정부의 돌봄과 육아 정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지시로 설치한 미래 노동시장연구회가 발표한 이른바 노동개혁의 핵심은 첫째 노동시간 유연화, 둘째 직무성과급을 중심으로 하는 임금 체계 개편 셋째 쟁의권 공격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오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바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입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노동시간 유연화 방안으로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 기간 확대, 탄력적 근로시간제 실효성 제고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사실 용어가 어려워 그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 근로시간을 1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이 1일 8시간이고, 주 40시간이기 때문에 연장 근로시간 1주 12시간이 한 주일의 최대 노동시간입니다. 그래서 주52 시간 노동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근로기준법을 고쳐 탄력근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탄력근로제에 따라 최대 주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인데, 최대 6개월까지 매주 연속 64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권고문은 연장 근로시간 단위 기간을 기존 1주에서 1개월 3개월 최대 6개월까지 확대해서 1주 노동시간을 52시간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권고문처럼 단위 기간을 1주에서 6개월까지 확대하면 1주 최대 노동시간이 64시간에서 69시깐까지 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의 주 64시간 탄력근로제는 3개월 이내 매일의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업주가 일을 더 자유롭게 시킬 수 있게 사후변경할 수 있도록 고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회사 사정에 따라서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에서 무려 69시간까지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어느 날 몇 시간을 일하는지도 사업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면 좋지. 이게 무슨 문제냐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분명히 문제입니다. 2020년 기준 OECD가 발표한 회원국 노동시간 현황을 보면 한국은 38개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입니다. 연간 1908시간을 일하는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콜럼비아가 2172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멕시코가 2124 시간으로 2위, 코스타리카가 1913 시간으로 3위입니다.

반대로 노동시간이 짧은 순서로 보면, 1위 독일, 2위 덴마크, 3위 영국, 4위 노르웨이, 5위 네덜란드 순서입니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은 1332시간으로 우리보다 576시간이 짧고 미국은 1767시간, 일본은 1598 시간이었습니다. 북유럽 선진국들만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짧은 것이 아니라 러시아, 크로아티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나 몰타, 칠레,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도 모두 우리나라보다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들입니다. 

문제는 노동시간이 긴 만큼 산업재해가 그 만큼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재사고 사망자는 영국의 10배 수준이고, OECD 산업재해 통계 비교에서도 줄곧 최상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OECD 통계를 보면 노동시간이 긴 나라와 산업재해가 많은 나라는 대체로 일치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겨도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결국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OECD의 이런 통계에 비춰보면 우리나라 엄마, 아빠들이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고, 현 정부는 앞으로 연장근로 시간 제도를 고쳐서 앞으로 노동시간을 더 늘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밤 8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서 돌봐줄테니 안심하고 연장 근로를 하라는 것이고, 24시간 어린이집에서 돌봐줄테니 안심하고 연장근로를 하라는 정책을 함께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보육시설을 더 늘리고 돌봄시간을 연장해줄테니 엄마, 아빠는 지금보다 더 긴 시간 일을 하라는 것이지요. 

일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서 국가가 해야하는 역할은 매주 69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24시간 보육시설을 많이 만드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 아빠는 지금보다 일을 적게 해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지요. 엄마, 아빠가 하루 8시간만 일하고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지, 엄마, 아빠는 매일 밤늦게까지 잔업과 야근을 하고, 아침 8시에 등교한 초등학생이 밤 8시까지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에 남아있고, 엄마, 아빠가 연장근무를 하는 동안 아이는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주당 69시간까지 일해야 먹고사는 나라에서는 결혼도 거부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