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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학술자료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과 진보당까지

by 이윤기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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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정당 고찰: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과 진보당까지



이윤기(정치외교학과)


          I. 서론


1. 연구의 목적
  오늘날 여러 사람이 진보정치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37%(80만 3358표)를 득표하였다. 심상정은 득표율은 19대 대선에서 자신이 얻었던 6.17%(201만 7458표)에 한참 못 미쳤으며, 권영길이 17대 대선 얻은 3.02%, 16대 대선에서 얻은 3.9%에도 못 미쳤다. 1997년 11월 18일 국민승리21의 창당 이후 최대의 침체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97년 국민승리21의 창당부터 2022년 현재의 정의당과 진보당으로 대표되는 약 25년간의 한국 진보정당의 형성과 발전(혹은 후퇴)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진보의 개념
  진보주의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하여 기존 질서의 변화와 지양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변화의 철학으로서 그 존재 의미를 가지며,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정치변동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치변동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기존체제의 방어 그리고 변증법적 통일의 결과라면 진보세력은 도전의 주체가 되고 진보주의는 도전의 이념적 지향이 된다(윤준식, 2012). 한국에서 진보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진보당을 자유당에 대한 혁신정당이라고 지칭한데 연유한다. 
  
          II. 1997년 이후 진보정당


1. 국민승리 21
  국민승리21은 진보정치연합과 당시 최대의 자파 연합세력이었던 전국연합이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국민후보를 추대하기 위하여 민주노총을 참여시켜 만든 정당이다. 진보정치연합은 노회찬, 조승수 등 민중당 재건파를 주축으로 1997년 2월 26일에 창당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이다. 진보정치와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었으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승리21 창당에 합류하였다. 약칭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1991년 12월에 결성하여 2007년까지 활동한 진보단체이자 대한민국의 정치단체로서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농민회총연맹, 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14개 운동단체와 13개 지역 운동단체가 참여하였다.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지지를 극복하고 독자 후보를 내기 위하여 진보정치연합, 전국연합,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예총,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이 결합하였다. 1997년 9월 7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국민승리21준비위원회에서 권영길이 대선후보로 공식추천되었다. 11월 19일 무소속 후보에게 불리한 통합선거법 때문에 정당등록을 위한 창당대회를 열었지만 대선용 한시 정당이었다. 선거후반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문제가 터지면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지자 내부에서 이탈하는 세력이 나타났고, 국민승리21 내부에서도 김대중을 지지하는 이른바 ‘전략투표’가 이루어졌다. 김대중이 당선되자 국민승리21의 일부 간부는 정부에 참여하였으며, 민주노총, 진보정치연합이 세렦을 주축으로 한 지도부는 2000년 총선 1년 전까지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결성을 결의하였다. 1998년 11월 15일에 해산된 국민승리21은 그해 6월 4일 실시된 제2대 지방선거에 51명의 후보를 추천하여 22명으 당선시켰다. 
2.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전신은 국민승리21이다. 1997년 대선을 거치면서 전국연합은 이탈하였고, 국민승리21에 참여할 때부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민주노총과 노회찬의 진보정치연합이 주축이 되어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을 창당(대표: 권영길, 사무총장: 노회찬)하였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21개 선거구에 후보를 내고 출마지역에서 평균 13.1%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97년 대선 때 전국에서 모은 표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였다면 최대 35석, 일본식 정당명부제였다면 최대 6석을 얻을 수 있는 득표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청구를 하였고, 2001년 7월 19일 헌번재판소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결과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에 대하여 위원 결정을 내림에 따라 별도로 비례대표 후보를 선택하는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다. 
  2002년 지방선거는 정당투표를 따로하는 1인 2표제가 처음 시행된 선거였는데, 민주노동당은 기초단체장 2명(울산), 광역의원 11명(비례 9명 포함)을 당선시켰고, 정당공천이 없었던 기초의원까지 모두 45명이 당선되었으며, 정당득표에서는 자민련을 제치고 8.13%를 득표하였다. 민주노동당이 득표한 8.13%, 134만표는 해방 이후 진보정당이 얻은 최대 득표였다. 한편,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권영길은 3.9%, 95만 7148표를 득표하였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2석(권영길, 조승수), 정당 득표율 13.1%를 득표하여 비례대표 10석을 당선시켰다. 원내 진출 직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어 정당 지지율이 20%에 육박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원내진출 이후 당권과 이념을 둘러싸고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갈등을 키웠다. 당시까지의 성과를 놓고보면 국민승리21이 선거 후 해산되지 않고 재기에 성공한 최초의 진보정치 조직이었다면, 민주노동당은 선거를 통해 성장의 계기와 발판을 마련한 최초의 진보정치 조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주요 선거에서 거둔 성과는 다음과 같다. 

  2006년 치러진 제4회 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원 15명(지역 5명, 비례 10명), 기초의원 66명(지역 52명, 비례 14명)이 당선되었는데,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처음 시행되었고, 기초의원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선거였다. 
  2007년 치러진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권영길 의원이 평등파의 지지를 받은 심상정, 노회찬 두 후보를 누르고,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0%의 득표율(71만 2121표)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4년 제17대 총선의 13.03%의 득표율은 물론, 2002년 대통령 선거의 3.9%보다 낮아진 수치였다.
  대통령선거 이후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2008년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제안하는 탈당이 시작되었고, 2008년 2월 8일, 센트럴시티 9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임시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원장의 혁신안이 부결되자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단병호를 비롯한 1만 7000여 명이 탈당하였다. 2008년 3월 진보신당 창당이 공식 선언되었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창원을에서 권영길 후보, 사천에서 강기갑 후보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정희, 정숙, 홍희덕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04년보다 5석 줄어들었지만, 권영길은 진보정당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정당 지지율은 2004년 총선의 13.1%에 못미치는 5.7%를 기록했으며, 진보신당의 2.9%를 합쳐도 9%가 되지 않았다. 
  분당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과 함께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해 인천에서 기초단체장 2명을 배출하였고, 24명(지역 18명, 비례 6명)의 광역의원을 당선시켰다. 한편,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전남 순천에서 최초의 호남 출신 국회의원인 김선동 후보를 당선시켰다.
  하지만,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자 진보적 성향들의 야당 통합이 추진되었고, 민주노동당을 장악하고 있던 당권파의 주도로 민주노동당과 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신설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이 출범하였다.
3. 진보신당
  진보신당은 2008년 3월 16일 민주노동당에서 평등파(PD) 성향의 당원들이 탈당하여 만든 정당으로 노회찬과 심상정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울산 북구의 조승수가 민주노동당과의 단일화를 통해 당선되면서 원내정당이 되었다. 2010년 제5회 동시지방선거에서는 3명의 광역의원이 비례대표로, 기초의원 22명이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2011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추진되었는데, 합의안이 부결되자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이 탈당하였다. 이후 홍세화를 당대표로 선출하여 활동하였으나 2012년 19대 총선 정당득표에서 2% 득표에 실패하여 등록 취소되었다. 이후 2012년 10월 22일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013년 7월에 노동당으로 재창당하였다.
4.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의 통합으로 2011년 12월 11일 출범하였다. 2012년 제19대 총선을 맞이해 이뤄진 진보정당들의 통합은 새로운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되었으며, 민주당 한명숙 대표와 야권연대 협상을 통해 양당 후보간 경선 76곳, 전략 공천지역 16곳, 민주당 후보 용퇴지역 9곳을 선정하였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지역구 의원 7명, 비례대표 6명으로 총 13석의 의석을 얻으며, 짧은 기간 집권을 향한 꿈도 꾸었지만, 경선 여론 조사 조작 의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의혹 등 되돌리기 힘든 상처와 분열, 폭력사태까지 겪으면서 초유의 정당 해산으로 이어졌다. 앞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자 심상정, 노회찬, 강동원 의원과 유시민,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탈당하였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정희 전대표가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였고,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진보정당’은 1992년 이후 처음으로 후보 없는 제19대 총선 당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하였던 김순자는 제18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대선을 치렀다(이시훈, 2013). 2013년 이정희 당 대표를 선출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였지만, 8월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고 9월 4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11월 5일 진보당 해산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고,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을 결정하였다.
  
5. 1990년 이후 진보정당 계보
  (1) 건설국민승리21 (1997년 ~ 1999년 11월 15일) → 민주노동당 (2000년 1월 30일 ~ 2011년 12월 5일) → 진보신당 분당(2008년 3월 16일)→통합진보당 (2011년 12월 6일 ~ 2014년 12월 19일) → 헌법재판소에 의한 해산
  (2) 청년진보당 (1998년 11월 29일 ~ 2001년 8월 26일) → 사회당 (2001년 8월 26일 ~ 2006년 4월 16일, 2008년 11월 30일 ~ 2012년 3월 4일) → 희망사회당 (2006년 4월 16일 ~ 2006년 10월 29일) → 한국사회당 (2006년 10월 29일 ~ 2008년 11월 30일) → 사회당 (2008년 11월 30일 ~ 2012년 3월 4일) → 진보신당 (2008년 3월 16일 ~ 2012년 4월 12일) → 진보신당 연대회의 (2012년 10월 22일 ~ 2013년 7월 21일) → 노동당 (2013년 7월 21일 ~ 2022년 2월 5일)
  (3) 녹색평화당 (2002년 5월 20일 ~ 2004년 2월 22일), 한국사회민주당 (2002년 11월 3일 ~ 2004년 2월 22일) → 녹색사민당 (2004년 2월 22일 ~ 2004년 4월 18일) → 등록 취소
  (4) 녹색당 (2012년 3월 4일 ~ 2012년 10월 13일) → 녹색당 더하기 (2012년 10월 13일 ~ 2014년 2월 19일) → 녹색당 (2014년 2월 19일 ~ 현재)
  (5) 진보정의당 (2012년 10월 18일 ~ 2013년 7월 21일) → 정의당 (2013년 7월 21일 ~ 현재)
  (6) 청년당 (2012년 3월 15일 ~ 2012년 4월 2일) → 우리미래 (2016년 12월 1일 ~ 2017년 3월 5일) → 미래당 (2017년 3월 5일 ~ 현재)
  (7) 복지국가당 (2016년 2월 15일 ~ 2017년 4월 25일) → 사회민주당 (2017년 4월 25일 ~ 2018년 10월 19일) → 해산
  (8) 민중연합당 (2016년 2월 27일 ~ 2017년 10월 15일) → 민중당 합당
  (9) 새민중정당 (2017년 9월 3일 ~ 2017년 10월 15일) → 민중당 합당 (2017년 10월 15일 ~ 2020년 6월 21일) → 진보당 (2020년 6월 21일 ~ 현재)
  (10) 환수복지당 (2016년 11월 21일 ~ 2017년 8월 15일) → 민중민주당 (2017년 8월 15일 ~ 현재)
  (11) 기본소득당 (2020년 1월 19일 ~ 현재)

          III. 정의당과 진보당


1. 정의당
  정의당은 노회찬, 조준호 공동대표가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2012년 10월 21일에 진보정의당으로 창당하였고, 2013년 7월 21일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었다. 진보정의당은 통합진보당(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노회찬, 심상정으로 대표되는 통합진보당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노동복지당(참여계 반대), 사회민주당(NL계 반대), 열린참여당(PD, NL계 반대). 사회진보당 등의 당명을 놓고 당내 계파간 논쟁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진보정의당으로 결정되었다. 
  진보정치의 새 시대를 선언한 정의당 창당준비위 선언문을 통해 “노동에 기반하고 시민이 참여하게 될 진보정의당은......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진보정당”을 선언하였다. 당시 진보정의당은 첫째 임무로 새누리당과 이명박 시대를 극복하는 ‘정권교체’로 내세웠고, 시대를 바꾸는 정당으로서 시장 만능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모든 국민이 자유 · 평등의 권리를 누리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진보적인 사회를 천명하였다. 재벌 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 노동과 노동의 가치가 존종받는 사회 그리고 복지 사회, 탈핵 · 탈 토건의 지속가능한 생태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하였으며, 분단체제를 극복과 평화 공존의 통일국가를 지향하겠다고 하였다. 특히 과거 진보정치의 분열과 실패를 극복하며, 혁신적 진보정당을로 변화하며, 노동기반 대중정당, 시민참여 진보정당, 국민적 생활적당을 지향하겠다고도 밝혔다. 진보정의당은 자신들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영세상공인, 여성, 청년, 장애인을 대변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창당대회에서는 노회찬, 조준호를 공동대표로, 심상정을 2012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각각 선출하였다. 당시 노회찬 대표는 당 대표를 수락하면서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2013년 2월 14일 노회찬 공동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하는데,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형을 선고받은 때문이다. 
  2013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 국민참여당 출신인 천호선을 당대표로 선출하였는데, 노동운동 출신이 아닌 최초의 당 대표였으며, 부대표로는 김명미(참여계), 이정미(NL계 인천연합), 문정은이 선출되었다. 
  


2. 진보당
  (1) 민중연합당
  2016년 2월 13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민중정치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로 선출된 강승철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비정규직철폐당 대표), 이광석 전 전농 의장(농민당 대표), 손솔 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흙수저당 대표)이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2016년 2월 27일, 경기도 성남시 성남실내체육관에서 민중연합당이라는 당명으로 창당대회를 열어 정식 창당하였다. 2016년 3월 13개 광역시, 도당이 조직되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72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한 석도 얻지 못하여 패배하였다. 비례대표1석 이상을 예상하였으나, 최소 득표율인 3%에 한참 못 미치는 0.61%로 녹색당보다 적은 득표를 하였다. 2017년 10월 새민중정당과 함께 민중당으로 신설 합당되었다.
  (2) 새민중정당
  새민중정당은 2017년 9월 3일에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되었다. 앞선 창당준비위에는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과 강병기 '민중의꿈' 상임대표, 김창현 진보대통합추진위원장 등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참여했다. 2017년 10월 15일 민중연합당과 통합하여 민중당을 출범시켰다. 
  (3) 민중당->진보당
  민중당은 2017년 10월 15일 창당하였으며, 2020년 6월 20일 당명을 진보당으로 변경하였다. 진보당은 민중당에서 당명 개정안 투표를 통해 결정된 당명이다. 진보당의 기반은 노동 운동, 농민 운동, 빈민 운동이며, 과거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민중당 시절 1기 상임대표는 김종훈, 김창한, 2기 상임대표는 이상규, 진보당으로 명칭을 변경한 3기 상임대표는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재연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11명을 당선시켰으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 득표율 1.05%를 얻는데 그쳤다.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김재연 후보가 출마하여 득표율 0.11%로 3만 7666표를 얻었다.
  
          IV. 시사점


1. 진보정당은 대중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2012년 3월 17~18일 통합진보과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권연대 과정에서 경선 여론 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고, 일부 증거가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 되었으며, 3월 23일 이정희 대표가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한편, 3월 14~18일까지 온라인 및 현장투표를 실시하여 비례대표 순위를 결정하였는데, 총선이 끝난 4월 20일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온라인 투표에서 앞섰던 후보들이 현장투표에서 순위가 뒤집혔는데 대리투표 부실한 투표 감시와 비정상적인 투표제도를 통해서 당권파 인사들이 몰표를 받아 비례대표 순위가 바뀌었다는 주장이었다. 경선여론조사 의혹과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사건은 훗날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에서 해산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사유가 되었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지역구 국회의원 7명과 비례대표 6명을 당선시키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성과를 뛰어넘었지만,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대중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였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탈당파가 주축을 이룬 정의당이나 잔류파가 당 해산 이후 새로 결성한 진보당에 대한 지지는 2004년 제17대 총선이나 2012년 제19대 총선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2. 한국 진보정당의 구조적 결함
  (1) 진보정당은 민중정당인가?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진보정당의 정책으로 만들어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가장 대표적 정책활동가 중 한 명인 이재영은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진보정치운동, 사회운동 세력, 속칭 운동권이 민중 세력인가에 대한 반성과 노력”을 촉구한다. 그는 민중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노조는 중산층이고 당은 인텔리고, 그들의 소득과 사회관계망, 의식은 이미 민중을 벗어나 있고, 민중을 잊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한 달에 100만원 받는 식당아줌마나 캐시어, 빨간펜 선생님, 비정규직, 비정규직도 여러 가지지? 노가다판의 잡부라거나 외국인 노동자라거나 이런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당시 전노협 조합원 보다 많고,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크고, 더 열악하고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어요. 그들에게 한국의 운동권(진보정치)은 접근하지 않아요.”
  그는 민중 세력을 진보정치의 주역으로 참여시키지 못하면 현재의 진보정당은 급진적 중산층 정당으로 전락하거나 과격한 민족주의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였다. 이재영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정의당과 진보당은 민중정당으로 거듭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2) 진보정치의 추락 원인
    ① 진보정당의 지지율 하락은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04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후 호감과 호기심의 거품이 꺼진 탓도 있지만, 민주노동당의 정치실패로부터 기인한다. 
    ② 장기적으로 진보정치운동에 대한 지지 하락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민 불신과 대기업 노조들의 조합주의에서 기인한다. 진보정치 세력 내 최대 지분을 가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계층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결국 국민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③ 진보정치 운동의 거듭되는 분열과 통합과정은 대중정당으로서 불신의 단초가 되고 있다. 운동권 내부의 자주파, 평등파를 비롯하여 수십 년간 지속 된 복잡한 정파로 나눠지는 이념적 갈등과 정파간 갈등, 학연, 지연, 출신 등으로 나눠지는 계파 갈등은 대중들에게는 납득 할 수 없는 조직 이기주의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분열과 이합집산 그리고 눈앞의 권력을 쫓는 노선 갈등과 당권 경쟁 역시 깊은 불신의 늪으로 이끌었다. 국민들은 보수정당과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적인 권력욕과 진보정당과 정치인들의 권력욕에서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④ 진보정당지지 집단은 386+고임금 정규직인데, 이들이 진보정당의 진보의제 채택을 가로막았으며, 대기업 노조는 진보정당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고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진보정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386+고임금 정규직은 스스로 보수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⑤ 보수정당인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정책적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고, 수구보수 정당과의 보수정당인 민주당 사이에서 보수정당들을 정책적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적 의제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다.
    ⑥ 정의당의 경우, 2020년 총선 이후에는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보수언론에 의하여 페미니즘 정당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⑦ 정의당의 경우, 인기투표식 정당공천으로 외부 영입인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비례대표로 의원을 지낸 후 지역구 출마를 통해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V.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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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2013) 한국진보정당의 역사, 해피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