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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늘도 에어컨 틀까말까 고민하셨다면...

by 이윤기 202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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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KBS1 라디오 <라이브 경남>에서 매주 월요일 이윤기의 세상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방송 내용과 조금 다른 초고이기는 하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2023. 8. 7 방송분)


매년 사상 최고의 폭염 기록을 갱신하고 올해도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는데요. 아마 가정에서는 매일매일 오늘 에어컨을 켤까말까 고민하고 있을텐데요. 폭염 때문에 에어컨을 켜지만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봐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꺼고 또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오늘은 전기요금과 에너지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올 8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 평균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10만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봄 한전이 전기요금을 인상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전기의 원료가 되는 LNG와 석탄의 수입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해도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서민들은 당장 한 여름에 에어컨을 켤지 말지 고민하게 됩니다. 정부는 서민들의 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 폭을 줄이고, 소득하위계층에게는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냉방비 대란을 막을 수 없습니다. 보조금이나 바우처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까닭은 냉방비를 비롯한 전기요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4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하였지만,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는 44조 6천억이나 됩니다. 2022년에도 32조 6천억원의 적자를 냈고, 2021년에도 5조 8천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일반 기업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한전은 6군데의 주요발전회사와 민간 발전회사로부터 비싸게 전력을 구입하여, 구입가격보다 낮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도 첨예합니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만 논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후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들 중에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싸기 때문에 전력 낭비가 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전기요금을 지금보다 2~3배쯤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고, 전기요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원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기요금 인상, 환경운동가들도 찬반 엇갈려

반면에 환경운동가들 중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데는 찬성하지만, 요금인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목표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전기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은 원론적인 가설일 뿐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택시요금이 인상되면 일정 기간 승객이 줄어들지만 몇 달 후에는 줄어들었던 승객이 다시 회복되는 것처럼 일시적인 전기소비는 줄어들지만, 지속적인 소비 감소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런 삶을 바꾸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가스, 전기와 같은 에너지 요금 상승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 즉 부자들에게는 큰 압력이 되지 않는데, 반면에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계층일수록 고통과 비참함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필수재의 요금이 오르면 한계 소비층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대신에 다른 소비를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전기요금이 인상되어도 전기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기후환경운동가들은 “이 정책의 목표가 전기 생산 원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라는 시장의 상품화 요구”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목표”라면 일괄 요금인상 정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즉 전기요금 인상은 전체 소비량을 줄이는 데는 덜 효과적이면서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만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영국 옥스팜에 따르면, 1990~2015년까지 25년간 누적탄소배출량을 소득에 따라 비교해보면, 소득 상위 10%의 사람들이 전체 탄소배출량의 52%를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하위 50%는 겨우 7%만 배출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기요금으로 전체 소비량을 줄이는 것은 실제 정책효과를 거두기 어려운데 에너지 불평등만 가속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대기업 전기요금 중소기업보다 싸다고?

202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20대 대기업이 쓴 전기량은 서울시민 전체가 쓴 가정용 전력사용량의 거의 2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전력사용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전기 단가를 싸게 책정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비롯해 상위 5개 기업이 내는 전기료는 당해 전체 산업의 평균 전기 요금보다 더 낮은 요금을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기소비와 전기요금을 연동시켜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요금을 내게 하려면 많이 사용할수록 더 낮은 요금을 내는 기업 전기요금구조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전력산업 구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한전이 공기업이기는 하지만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정부 지분이 51%이기는 하지만, 민간자본도 49%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한전에서 수익이 생기면 민간자본에게 배당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챙기게 되는 것이지요. 

 

아울러 한전은 공기업이지만, 한전에 비싸게 전기를 파는 발전회사들은 SK, GS, 포스코 등의 지분이 40%를 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적자운영을 하면서도 민간발전회사들로부터 비싸게 전기를 사들이고 있고, 실제로 한전은 적자인데, 민간 발전사들은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상이 소비를 줄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간 발전사들의 잇속만 채우게 될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합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 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이 요금인상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전력 생산의 60%가 석탄이나 가스에 의존하는 구조를 재생에너지가 60%이상 되도록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8.3%, 석탄, 가스 63.5%, 원자력이 24.4%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발전단가가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것은 풍력과 태양광 뿐입니다. 전기요금 인상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방법 뿐입니다.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지금같은 폭염에 에어컨을 켜는 것 때문에 국민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것은 정부의 책임입니다.